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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의약품 승인’. 부끄럽지만 이런 자극적인 제목은 언론이 손쉽게 활용하는 아이템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책적으로 방치된 희귀질환 환자들의 절박한 현실이 있다.
거의 모든 이에게 생소한 이염성 백질이영양증(ALD) 환자를 위한 유전자치료제 리브멜디(미국 상품명 렌멜디)는 미국 약가 기준 425만 달러(약 58억 원)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이다. 또 대부분의 기사는 최고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래야 흥미를 갖고 기사를 읽을 테니까.
그러나 실제로 이 치료제를 급여 적용해 사용할 수 있는 나라는 극히 제한적이다. 미국·영국·독일·이탈리아 정도가 전부다. 유럽 내 공동 의약품조달 동맹으로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오스트리아·아일랜드 5개국으로 구성된 베네룩사 역시 3개국만이 협상을 마치고 급여했다.
리브멜디의 적응증을 고려해 실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 수를 따지면 6개국 합해도 연간 20명을 넘지 않는다. 영국이나 네덜란드는 급여 결정 당시 자료를 살펴보면 환자 수가 연간 1~3명 정도일 것으로 추정됐다.
그 외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경제성 평가의 벽을 넘지 못하고 급여권 진입에 난항을 겪고 있다. 높은 약가를 감당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폰 히펠-린다우(VHL) 증후군 환자들이 유일한 치료제인 웰리렉(벨주티판)의 건강보험 급여 지연으로 인해 생명권과 건강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VHL 증후군은 중추신경계·신장 등 다양한 장기에 악성 종양이 발생하는 희귀질환으로, 수술 외에는 사실상 달리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다. 웰리렉은 이미 2023년 5월 허가를 받았으나, 월 치료비가 2261만 원에 달해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거나 적정 용량 미만으로 복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간 10여 명 정도가 치료 대상이고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지만 급여 결정이 늦어지면서 치료 접근성이 박탈됐다는 게 연합회의 주장이다.
긴 기다림 끝에 다행히 일부 치료제에 대해서는 급여가 적용된 사례가 있다. 대표적으로 2022년 8월 국내에서 급여 등재된 척수성 근위축증(SMA) 치료제 졸겐스마는 한 번 투여 시 20억 원이 넘게 드는 초고가 치료제지만 환자 본인부담금을 약 6백만 원 수준으로 낮춰 접근성을 개선한 사례다. 하지만 대상 환자의 제한 등 현실적인 치료 진입 장벽을 완전히 없앴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의 본질은 경제성 평가 방식이다. 현행 보험급여 심사 과정은 환자 수가 적은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약제와 같은 경제성 평가 기준을 적용한다.
이는 환자 수가 극소수라는 이유로 급여 적용을 어렵게 하는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대부분 임상적 가치가 크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비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질환의 특성를 고려해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별도의 평가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를 위한 별도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희귀 질환 치료제 전용 예산을 확보하여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지원하고 있으며, 호주 또한 희귀질환 전담 펀드를 운영 중이다. 국내에서도 희귀질환 치료제 급여 결정을 위한 특별한 심사 기준과 전용 재정 지원 프로그램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 의료 전문가, 제약사, 정부가 참여하는 정책적 협의체를 구성해 공론화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공론화를 통해 치료제 급여 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접근성 문제는 단지 재정적 이슈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 보호라는 윤리적 차원의 문제다.
경제 논리를 뛰어넘는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희귀질환 환자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생존권이 위협받아서는 안된다. 작은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귀 기울이고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정책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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